총리가 신사 대신 주차장에서 허리를 숙인 이유
· 직접 참배 대신 600m 거리서 신도식 절·박수 절차 밟아
· 지지율 하락 속 보수층 이탈 경계가 배경, 지지통신 분석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8월 15일 종전기념일에 야스쿠니신사 방향으로 허리를 숙이는 요배(遙拜) 의식을 거행했다. 신사에 직접 발을 들이지 않고 600미터 밖 주차장에서 신도식 절차를 밟은 것으로, 〈지지통신〉은 현직 총리가 야스쿠니 요배를 공식 인정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평했다.
오전 11시 9분, 무도관 주차장에서 서북쪽으로
다카이치 총리는 8월 15일 오전 11시 9분 일본무도관 주차장에 도착했다. 무도관에서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전쟁으로 숨진 일본인 전체를 추모하는 전국전몰자추도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그는 행사장으로 곧바로 향하지 않았다. 주차장에 선 채로 서북쪽 약 600미터 거리에 위치한 야스쿠니신사 방향으로 몸을 돌려 요배 의식을 거행한 뒤 무도관으로 들어갔다. 같은 날 다카이치 총리는 야스쿠니신사에 공물 대금도 보냈다.
이배이박수일배: 신도식 경의의 절차
8월 15일자 〈TV아사히〉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배이박수일배(二拜二拍手一拜) 방식으로 요배했다고 보도했다. 두 번 허리를 숙이고, 두 번 박수를 치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이는 순서다. 신사 참배 때 사용하는 신도식 정식 예법이다.
야스쿠니신사에서 제신(祭神)으로 추앙되는 이들은 19세기 중후반 이후 일왕을 위해 전사한 군인·군속들이다. 이배·이박수는 그들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의식이다. 〈지지통신〉은 이 의식이 공물 봉납과는 “차원을 달리”한다고 전했다. 공간적 거리가 있을 뿐, 절을 올린다는 점에서 직접 참배와 실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취지다.
“야스쿠니신사를 향해 요배” — 총리실이 직접 확인
〈지지통신〉은 “수상 주변에서는 ‘야스쿠니신사를 향해 요배했다’고 분명히 말했다”고 보도했다. 방향에 대한 다른 해석의 여지를 총리실이 직접 차단한 것이다.
〈지지통신〉은 “현직 총리에 의한 야스쿠니 요배가 밝혀지게 된 것은 이례적”이라고 평했다. 과거에 유사한 선례가 통계화될 만큼 축적돼 있지 않기 때문에 ‘사상 최초’라는 단정 대신 ‘이례적’이라는 우회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지율 하락과 보수층 이탈 경계
〈지지통신〉은 이번 요배의 배경으로 국내 정치 상황을 꼽았다. “참배 보류로 인한 보수층의 이반을 경계했기 때문”이라며, “내각 지지율이 하락 기조로 바뀌는 중”에 이번 일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야스쿠니신사 직접 참배는 한국·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 마찰을 반복적으로 촉발해 왔다. 참배를 보류하면 보수 지지층이 이탈할 수 있고, 강행하면 외교적 부담이 커지는 딜레마 속에서 요배라는 방식이 선택됐다는 분석이다. 〈지지통신〉은 이를 “이례적 상황”을 낳은 직접 원인으로 설명했다.
군국주의 시기의 야스쿠니 요배: 1938년 문부성 공문
야스쿠니 요배는 이번에 처음 등장한 방식이 아니다. 일본 국립공문서관 디지털 아카이브에는 1938년 4월 8일 문부성이 작성한 ‘야스쿠니 임시대제(大祭)에 붙이는 요배식 거행에 관한 건’이라는 공문서가 수록돼 있다. 야스쿠니신사 제례일에 직접 참배 대신 요배를 실시하라는 내용을 각 지방에 통지한 문건이다.
먼 거리에서 신사 방향으로 절을 올리는 요배 방식은 군국주의 시기에 이미 제도적 형태로 전국에 확산돼 있었다.
1943년 학도병 송별식: 궁성·메이지·야스쿠니를 한 자리에서
‘와세다대학 문화자원 데이터베이스’에 소개된 〈와세다대학 백년사〉에 따르면, 1943년 10월 21일 문부성이 주관한 출진학도장행회(出陣學徒壯行會)—학도병 송별 행사—에는 궁성 요배, 기미가요 제창, 메이지신궁 요배, 야스쿠니신사 요배, 선전포고문 낭독, 총리 훈시, 문부대신 훈시 등이 순서에 포함됐다. 황거·메이지신궁·야스쿠니신사를 한꺼번에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각 장소를 향한 요배로 대체한 것이다.
| 시기 | 사건 | 주체 |
|---|---|---|
| 1938년 4월 8일 | 야스쿠니 제례일 요배식 거행 지방 통지 공문 작성 | 일본 문부성 |
| 1943년 10월 21일 | 학도병 송별회에 궁성·메이지신궁·야스쿠니신사 요배 순서 포함 | 문부성 주관 (전국 대학) |
| 2026년 8월 15일 | 종전기념일 무도관 주차장에서 야스쿠니 방향 요배 |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
요배 강요의 목적: 전사를 대중 심리로 확산
군국주의 시기 야스쿠니 요배 강요는 단순한 전사자 추모 이상의 목적을 지녔다. 내각정보국이 발행한 1938년 4월 20일자 〈주보(週報)〉 제79호에 따르면, 야스쿠니신사의 존재 의의는 제신으로 추앙된 전사자들의 최후가 군인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의 심리 속으로 확산되도록 하는 데 있었다.
요배 의식은 그 심리적 확산을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신사에 직접 갈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방향을 향해 절을 올리는 형식을 통해 동일한 심리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 활용됐다는 것이다.
8월 15일, 한국과 일본의 엇갈린 시선
8월 15일은 한국에서 광복절, 일본에서 종전기념일이다. 양국이 같은 날짜에 서로 다른 역사 인식을 표출하는 구도는 해마다 반복된다. 한국에서는 이날을 전후해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 기억을 표현하는 흐름이 이어진다. BTS 지민·슈가의 광복절 태극기 의상이 국제 음악 시상식 논의로 연결된 것도 그러한 맥락 위에 있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관련 행보는 매년 이 시점에 외교적 쟁점으로 부상해 왔다. 이번 다카이치 총리의 주차장 요배는 직접 참배라는 형식을 피하면서도 야스쿠니를 향해 절을 올린 전례 없는 사례로 기록됐다. 〈지지통신〉은 이를 내각 지지율 하락이라는 국내 정치 요인과 직접 연결해 분석했다.
출처: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