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야 한다”던 반지하, 4년이 지나도 24만 가구 중 95%는 그대로
· 매입임대 연 5000호 이상에서 올해 2084호로 지속 급감
· 바우처 예산 20% 삭감, 물막이판도 22%가 여전히 미설치
2022년 8월 서울 관악구와 동작구에서 기록적 폭우로 반지하 거주자들이 목숨을 잃은 지 4년이 됐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반지하 주택은 사라져야 한다”며 단계적 철거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혔으나, 이후 정부와 서울시 지원을 통해 지상층으로 이주한 반지하 가구는 전체의 4.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 연대체 재난불평등행동은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정부와 서울시에 촉구했다.
참사 4주년 추모 기자회견, 광화문에서 열려
재난불평등행동은 2026년 8월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반지하 폭우 참사 4주년을 맞아 기후재난 희생자 추모 집회 및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단체는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침수 방지 시설 의무화, 이주 지원 예산 증액 등을 정부와 서울시에 공식 요구했다.
재난불평등행동이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이주 실적 자료는 황운하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의원실을 통해 지난달 20일 입수한 정부·서울시 집계치다. 2022년 8월 8일과 9일, 관악구와 동작구 일대 반지하 주택을 덮친 기록적 폭우로 내부에서 탈출하지 못한 거주자들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오세훈 시장은 당시 “반지하 주택은 사라져야 한다”고 공표했고 정부도 종합 대책 마련에 나선 바 있다.
4년간 이주 가구 4.6%···24만5194가구 중 1만1396가구
재난불평등행동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참사 이후 정부와 서울시의 지원을 통해 지상층으로 이주한 반지하 가구는 1만1396가구다. 전체 반지하 가구 수 24만5194가구 대비 4.6%에 해당한다. 이 중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한 가구는 1만244가구, 민간 전월세 주택으로 이주한 가구는 1152가구였다.
공공임대 이주가 주된 창구였으나, 이마저도 전체 반지하 가구의 4.2% 수준에 불과하다. 참사 이후 4년간 이주 지원이 미치지 않은 가구가 23만 가구를 넘는다는 의미다. 나머지 95% 이상의 반지하 가구는 현재도 지하 주거환경에 머무르고 있다.
SH공사 기여는 1203가구뿐, 이주 지원 대부분 LH 의존
공공임대로 이주한 1만244가구 가운데 서울시 산하 공기업인 SH공사가 직접 공급한 물량은 1203가구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나머지 이주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의존한 구조였다. SH공사의 기여가 공공임대 이주 전체의 약 12% 수준에 그친다는 계산이 나온다.
SH공사는 서울시가 출자한 도시개발 공기업으로, 서울 내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담당하는 핵심 기관이다. 오세훈 시장이 반지하 철폐를 공언한 주체가 서울시인 만큼, SH공사의 이주 지원 실적이 1203가구에 그쳤다는 사실은 서울시 자체의 이행 책임 문제와 맞닿아 있다.
매입임대 연 5000호에서 올해 2084호로···취임 후 지속 감소
재난불평등행동은 이주 지원 부진의 핵심 원인으로 매입임대주택 공급 급감을 지목했다. 매입임대주택이란 LH나 SH공사 같은 공공기관이 기존 민간 주택을 직접 매입한 뒤 저소득층에게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 시기 | 서울시 매입임대 매입 실적 |
|---|---|
| 2020~2021년 | 연간 5,000호 이상 |
|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 지속 감소 |
| 2026년(현재) | 2,084호 |
단체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0~2021년 연간 5000호 이상이던 매입 실적이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지속 감소해 2026년 현재 2084호에 그쳤다. 단체는 감소 추세가 취임 시점과 맞물린다고 밝혔다.
반지하 거주자 대부분이 저소득 취약계층인 만큼, 지상 이주를 위해서는 시세보다 저렴한 공공임대 물량이 충분히 받쳐줘야 한다. 핵심 공급원인 매입임대 물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상황에서 이주 실적 부진은 구조적으로 예견된 결과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바우처 예산 20% 삭감, 지원 대상도 ‘참사 당일 거주자’로만 제한
서울시는 2022년부터 반지하 가구가 지상 민간주택으로 이주할 경우 월 최대 20만원을 지급하는 ‘서울시 반지하 특정바우처’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지원 대상이 2022년 8월 9일 참사 당시 해당 반지하에 실제로 거주하던 사람으로 한정돼, 이후 입주한 가구는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이 구조는 반복적 악순환을 낳는다. 기존 세입자가 바우처를 받아 지상으로 이주하면, 저렴한 주거지를 찾는 또 다른 주거취약층이 빈 반지하로 들어온다. 새 입주자는 바우처 대상이 아니므로 지원 사각지대에 놓인다. 반지하 거주 인구 자체를 줄이는 효과보다, 누가 반지하에 사느냐만 교체되는 구조다.
올해 바우처 예산은 30억4600만원으로 전년(38억4000만원) 대비 약 20% 감액됐다. 지원 대상 제한과 예산 축소가 겹치면서 제도의 실효성이 더욱 낮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침수 방지 물막이판, 22%는 집주인 미동의로 여전히 미설치
이주 이전 단계의 단기 안전 대책인 침수 방지 시설 설치도 지체되고 있다. 서울시가 침수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반지하 주택 중 22.2%는 임대인 등의 미동의로 물막이판이 아직 설치되지 않은 상태다.
재난불평등행동은 집주인들이 시설 설치를 거부하는 배경에 부동산 가치 하락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물막이판이 설치되면 해당 주택이 침수 위험 구역임이 외부에 드러나 집값이 떨어질 것을 집주인들이 우려한다는 것이다. 임대인의 재산상 판단이 세입자의 생명 안전보다 우선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단체는 주장했다.
단체는 서울시가 임대인 비협조에 대한 별도 대책 없이 자발적 동의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제 개편 여파로 임대인이 세입자에게 퇴거를 요구하는 사례가 늘면서 임대시장 내 권력 불균형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상황과도 맥을 같이한다. 행정이 임대인과 세입자의 이해충돌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가 논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단체 “재해위험개선지구 지정 등 서울시 적극 행정 필요”
재난불평등행동은 침수 방지 시설 설치 의무화를 위한 법적 수단으로 ‘재해위험개선지구’ 지정을 서울시에 요구했다. 해당 지구로 지정되면 임대인의 개별 동의 없이도 위험방지시설 설치를 행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는 설명이다.
단체는 재해위험개선지구 지정과 함께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이주 지원 예산 증액, 바우처 지원 대상 확대를 정부와 서울시에 촉구했다. 청년주택 부족 문제를 두고 폐기 버스 활용 같은 이색 대안까지 논의되는 상황과 달리, 반지하 주거 문제는 4년째 기본 이주 지원조차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서울시는 이번 기자회견에 대한 공식 입장을 아직 내놓지 않았다. 반지하 폭우 참사 4주년을 계기로 이주 지원 부진과 안전 시설 미비 실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만큼, 서울시가 구체적인 보완 대책을 내놓을지 여부가 향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출처: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