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줄이려는 집주인, 세입자에겐 퇴거 통보…세제개편의 역설
· 집주인 절세 선택이 세입자 퇴거 압박으로 직결
· 서울 아파트 78주 연속 상승, 임대 매물 감소 우려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에 30평대 아파트를 전세로 사는 A씨는 지난 4일 집주인에게서 예상치 못한 전화를 받았다. 집주인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부담을 이유로 아파트를 팔겠다며,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내년에 집을 비워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계약갱신권도 못 쓰고 2년 만에 집을 비워줘야 할 처지가 됐다”고 6일 토로했다.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세제개편안이 세입자 주거 안정을 직접 위협하는 파장을 낳고 있다.
전세 2년 만에 퇴거 요청 — 올림픽파크포레온 사례
A씨의 상황은 세제개편안이 세입자에게 어떻게 전가되는지를 보여주는 초기 사례로 부각되고 있다. 집주인이 매각을 결정하면 세입자는 임대차보호법상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더라도, 소유권이 이전된 후 새 매수인이 실거주를 요구할 경우 사실상 퇴거를 막기 어렵다. 집주인이 매각 대신 직접 입주하기로 해도 마찬가지다. 임대인의 실거주는 계약갱신청구권 거절 사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세제 구조가 바뀌면서 집주인의 절세 선택지가 결국 세입자의 거주 불안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거주 1주택자와 다주택자를 겨냥한 이번 증세안이 정작 세입자에게 전가되는 모양새다.
세제개편안 핵심: 보유에서 거주로 세액공제 기준 전환
이번 개편의 핵심은 세액공제 기준을 ‘보유 기간’에서 ‘거주 기간’으로 단계적으로 바꾸는 데 있다. 종부세는 그동안 주택 보유 기간에 따라 20~50%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었다. 2028년부터는 이 기준이 단계적으로 거주 기간으로 전환된다.
양도소득세 장기보유특별공제(장특공제)도 같은 방향으로 개편된다. 단계적으로 실거주 요건을 충족해야만 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집주인이 본인 집에 직접 들어가 살거나, 다주택을 처분하지 않는 한 보유세와 양도세 부담이 동시에 커지는 구조다. 종부세와 장특공제 두 가지 모두 실거주를 기준으로 재편된다는 점이 이번 개편의 핵심 특징이다.
집주인의 실거주 선택이 세입자 퇴거로 연결되는 구조
절세 수단이 ‘실거주’로 좁혀지면 집주인이 세입자를 내보내고 직접 거주를 선택할 유인이 커진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실거주 중심 규제가 강화되면서 비거주 주택 보유자가 절세 목적으로 본인 집에 들어가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닌 세제 변화의 여파를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상황이다. 집주인이 내리는 절세 판단 하나가 세입자의 이사 일정과 주거 안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른다’—잠재적 퇴거 불안의 일상화
지난해 서울 서대문구 아파트를 전세 계약한 B씨도 같은 불안을 호소했다. B씨는 “언제 집주인한테 연락이 올지 불안하다”며 “서울에 자가 마련은 대출 규제 탓에 진작에 포기했는데, 이젠 서울에 세입자로 사는 것조차 높은 벽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A씨와 B씨의 사례는 단발적 불운이 아니다. 세제 구조가 집주인의 실거주를 체계적으로 유도하는 방향으로 개편된 이상, 유사한 퇴거 요청은 어느 지역, 어느 세입자에게든 닥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언제 집주인한테 퇴거 요청을 받을지 모르는’ 잠재적인 공포가 세입자들의 일상으로 파고들고 있다.
임대 매물 감소와 전월세 가격 상승 압박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임대 매물이 줄면 전월세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집주인이 실거주를 택하거나 주택을 처분하면 임대 시장에 나오는 물량이 줄고, 남은 매물에 수요가 집중되면서 전세·월세 가격이 올라가는 구조다.
이 흐름은 이미 일부 지역에서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을 보면 서울 전세가격은 성북구(0.49%), 노원구(0.42%), 금천구(0.38%) 등 중저가 지역에서 서울 평균(0.25%)을 크게 웃도는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강남 급매물의 한계: ‘현금 부자만의 바겐세일’
정부는 다주택자의 매물 출회가 집값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보유세 부담이 커지는 강남권에서 은퇴 고령층이 주택을 내놓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실제로 서초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세제 개편 후 소득이 적은 고령층의 급매물이 일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매물을 살 수 있는 계층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이 문제로 지목된다. 정부의 대출 규제로 25억원을 초과하는 주택에는 최대 2억원까지만 대출이 나온다. 해당 공인중개사는 “중산층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며, 결국 현금 부자만 바겐세일로 사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유세 부담은 소득 낮은 고령층에 집중되는 반면, 매수 수혜는 현금 자산가에게 돌아가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 아파트 78주 연속 상승 — 외곽 중저가 지역 ‘불장’ 지속
세제 논란과 별개로 서울 아파트 시장의 상승세는 이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78주 연속 올라 전주 대비 평균 0.26% 상승했다. 세제개편안을 둘러싼 관망 분위기 속에 강남 3구는 상승 폭이 다소 줄었지만, 중랑구(0.52%)·성북구(0.49%)·노원구(0.46%) 등 외곽 지역에서는 강세가 이어졌다. 중구는 0.54%로 서울 내 상승 폭이 가장 컸다.
| 지역 | 매매가 주간 변동 | 전세가 주간 변동 |
|---|---|---|
| 서울 평균 | +0.26% | +0.25% |
| 중구 | +0.54% | — |
| 중랑구 | +0.52% | — |
| 성북구 | +0.49% | +0.49% |
| 노원구 | +0.46% | +0.42% |
| 금천구 | — | +0.38% |
데이터 출처: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2026.8.3 기준). ‘—’는 해당 기사에서 수치가 확인되지 않은 항목.
전망: 중저가 집값·전세가 동반 상승 가능성
남혁우 연구원은 “세제개편안이 중저가 지역의 집값 안정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며 “임대 매물 감소로 매매 수요가 늘면 중저가 지역 집값도 계속 오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세제 개편이 강남권 일부 매물 출회를 이끌더라도, 서울 전체 집값을 안정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오히려 임대 매물 감소로 전월세 시장이 더 불안해지고, 세입자들의 매매 전환 수요가 중저가 지역으로 몰릴 경우 해당 지역 집값을 추가로 끌어올리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세입자 보호와 임대 시장 안정이라는 두 과제 사이에서 이번 세제개편안이 어떤 균형을 찾을 수 있을지, 시장과 전문가들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출처: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