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 통장에서 1억2000만원까지, 26세의 숫자
· 서른 전 3억 목표엔 연 18% 수익률 필요하다는 냉정한 계산
· 재무 코치 처방: 통장 쪼개기와 청년미래적금 우선 활용
월 생활비 72만원으로 1억2000만원을 모은 26세 직장인의 이야기가 재무 상담 현장에서 주목을 받았다. 전셋집 대출 이자까지 포함하고도 한 달 지출을 72만원에 묶어두고, 4년여 만에 1억2000만원이라는 금액을 쌓았다. 그러나 서울 중구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 본사에서 이뤄진 재무 진단에서 가장 먼저 확인된 사실은 성취 못지않게 두드러지는 ‘목표와 현실의 괴리’였다.
월 72만원 생활비, 구체적으로 어떻게 유지했나
직장인 이정민(26·가명)씨의 지출 구조는 단순하다. 점심과 저녁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해결한다. 출퇴근은 도보로 한다. 교통비가 사실상 0원인 생활이다. 그 결과 전셋집 대출 이자를 포함하고도 월 고정 지출이 72만원을 넘지 않는다.
금융위원회와 서금원이 운영하는 ‘청년 모두를 위한 찾아가는 재무 상담’ 서비스를 통해 이씨를 만난 은행 지점장 출신 재무 코치는 “지금까지 상담한 청년 중 손에 꼽힐 정도로 지출 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씨가 이 서비스를 찾은 것은 칭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철저한 절약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다음 목표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장 잔고 5만원에서 1억2000만원까지의 경로
이씨가 본격적으로 돈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22세 무렵이었다. 당시 통장에는 단 5만원밖에 없었다. 전문직을 목표로 수험 생활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부모에게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다. 수업이 없는 시간을 대부분 아르바이트로 채웠고, 휴학 기간에는 오전 9시부터 자정까지 하루 15시간씩 일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수험 생활을 시작했지만 공부가 맞지 않아 1년이 채 안 돼 그만뒀다. 남은 것은 돈과 절약 습관이었다. 학생 시절에도 장을 봐 집에서 식사를 해결했고, 모인 종잣돈으로 주식 투자를 병행했다.
이씨는 “열심히 살다 보니 어느 순간 통장에 7000만원이 쌓여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투자로 자산을 더 불려 현재 1억2000만원에 이르렀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은 없다.
3억 목표와 ‘연 18% 수익률’이라는 산술
이씨의 목표는 서른 살이 되기 전에 3억원을 모아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다. 현재 1억2000만원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4년 안에 1억8000만원을 추가로 쌓아야 한다.
코치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이 목표의 수치를 검증하는 일이었다. 이씨의 세후 월급은 280만원 수준이다. 현재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며 매달 200만원을 저축한다고 가정하면, 4년간 원금은 9600만원에 그친다. 목표 금액에서 8000만원가량이 비는 셈이다. 이 부족분을 투자 수익으로 채우려면 연평균 18% 안팎의 수익률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코치는 “18%를 목표로 투자하라는 뜻이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수치는 무리한 수익률 의존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수치로 보여주는 진단이었다. 소득, 저축 목표, 생활비, 투자 수익률을 현실에 맞게 조정하지 않은 채 높은 수익률에만 기대는 방식은 달성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진단 결과: 구조 없이 쌓인 자산
재무 진단에서 드러난 핵심 문제는 이씨의 절약 의지가 아니라 자산 관리의 체계 부재였다. 급여와 생활비가 같은 통장에서 오갔고, 비상금과 3~4년 뒤 사용할 주택 구매 자금, 장기 투자금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700만원에 달하는 비상금이 이자가 거의 붙지 않는 입출금 통장에 그대로 묶여 있는 것도 지목된 문제였다. 절약해 모은 돈이 목적에 맞게 배분·운용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처방 1: 통장 쪼개기로 자금 목적을 분리한다
코치가 내린 첫 번째 처방은 통장을 목적에 따라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것이었다. 월급날 생활비 72만원만 주거래 통장에 남기고, 나머지 금액을 2 대 8 비율로 나눠 비상금 통장과 자산 형성 통장으로 이체한다.
경조사비나 여행 경비 같은 비정기 지출은 비상금 통장에서 꺼내 쓰고, 사용한 뒤에는 자산 형성 몫 일부를 돌려 수개월에 걸쳐 원래 잔액을 회복한다. 자금의 목적을 명확히 구분함으로써 계획 외 소비를 차단하고, 각 목적에 맞는 금융 상품으로 운용할 수 있게 되는 구조다.
처방 2: 주식보다 청년미래적금을 먼저 채워라
두 번째 조언은 투자 자산의 순서를 재조정하는 것이었다. 코치는 주식 투자에 앞서 혜택이 큰 정책 금융 상품을 먼저 채우라고 권했다. 구체적으로는 청년미래적금에 월 납입 한도인 50만원을 우선 넣고, 남은 자금으로 주식 등 투자 자산을 운용하는 방식이다.
| 항목 | 내용 |
|---|---|
| 가입 대상 | 만 19~34세 청년 |
| 월 납입 한도 | 50만원 |
| 납입 기간 | 3년 |
| 적용 금리 | 최고 연 8% |
| 정부 기여금 | 납입액의 6% 또는 12% (소득·근로 형태 조건 충족 시) |
| 세제 혜택 | 이자소득세 면제 |
| 신청 현황 | 지난달 마감, 올해 말 재개 예상 |
청년미래적금은 지난달 신청이 마감됐으나 올해 말 창구가 다시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주식 시장 변동성이 커진 시기일수록 원금 손실 없이 정부 기여금과 세제 혜택이 더해지는 이 상품의 실질 수익률이 경쟁력을 갖는다는 것이 코치의 판단이었다.
청년 재무 상담 서비스, 이씨 사례가 드러낸 것
‘청년 모두를 위한 찾아가는 재무 상담’은 금융위원회와 서금원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무료 서비스다. 은행 지점장 출신 등 현장 경험을 가진 전문가가 재무 진단표를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자산 설계를 도와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씨의 사례는 철저한 절약이 자산 형성의 출발점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만으로는 목표에 닿기 어렵다는 현실도 함께 드러냈다. 통장 분리, 정책 금융 상품 우선 활용, 투자 자산 배분 조정이라는 세 가지 구조적 처방이 병행될 때 비로소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상담이 남긴 핵심 진단이다. 절약 습관을 갖췄지만 자산 배분 방향을 잡지 못한 청년들이 이 서비스의 주요 대상이다.
출처: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