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간 ‘전과자’로 불린 남자의 진짜 이름
· 아내 민금순, 수십 년간 침묵으로 가족 보호…피란 중 기록 소각
· 손녀 마거릿 주혜 리, 20년 조사 끝에 ‘비밀의 들판’ 한국 출간
1933년 촬영된 한 청년의 사진이 있다. 이름은 이철하. 그러나 그를 기억하는 가족은 수십 년 동안 존재하지 않았다. 전과자이자 공산주의자라는 꼬리표 때문이었다. 그가 일제에 맞서 학생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은 사망 이후 60년 가까이 가족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손녀 마거릿 주혜 리(Margaret Juhye Lee)가 20여 년에 걸쳐 그 역사를 복원한 책 ‘비밀의 들판’이 이달 한국에 소개됐다.
항일 학생운동가 이철하, 27세에 생을 마감하다
이철하는 일제강점기 학생 항일운동에 가담한 독립운동가다. 운동에 참여한 대가로 4년간 옥고를 치렀고, 수감 중 결핵에 걸렸다. 출소 이후에도 병은 낫지 않았다. 결핵은 어린 아들 이은설에게까지 옮겨갔고, 이철하 자신은 27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짧은 생이었지만 그가 치른 대가는 가족 전체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이철하의 이름은 공식 기록 어딘가에 살아 있었지만, 가족에게 그 기록이 닿기까지는 수십 년이 더 필요했다. 세상을 떠난 이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가족보다 바깥에 더 많았다는 역설이 이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아내 민금순의 침묵 — 생존을 위한 선택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아내 민금순이 택한 방법은 침묵이었다. 전과자이자 빨갱이로 기록된 남편의 존재를 가족사에서 지워냄으로써 자식들을 사회적 낙인에서 보호하려 했다. 6·25 전쟁 피란길에는 남편의 책과 수감 기록을 직접 불태웠다. 이후 아들 이은설에게도 남편에 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후대의 시선에서는 역사를 지운 선택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반공 이념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시절, 공산주의자 남편을 둔 가족이 겪을 수 있는 불이익은 실질적이었다. 민금순의 침묵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의 생존 전략이었다. 그 선택이 역사의 공백을 만들었고, 그 공백을 채우는 데 세 세대가 필요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가족, 비어 있는 할아버지의 자리
이철하의 결핵은 아들 이은설에게도 영향을 남겼다. 병역 의무를 마치지 못하게 된 이은설은 당시 한국 남성으로서의 정상적인 사회적 궤도에서 벗어나게 됐다. 비행기 구경도 쉽지 않던 1960년대에 미국 유학길을 택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였다. “애비 없는 자식”이라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가족의 사정을 아는 이도 없는 곳을 선택한 것이다.
미국에서 이은설은 대학에서 통계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정착했다. 장녀 마거릿 주혜 리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한 모범생으로 성장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할머니 민금순이 이따금 아들 부부의 집을 찾아 손주들에게 한국말을 들려줬지만, 할아버지 이철하의 이름은 언제나 그 이야기에서 빠져 있었다. 단란해 보이는 가족의 이야기엔 언제나 할아버지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트라우마는 시들지 않았다. 아버지 없이 자란 삶을 굉장한 낙인처럼 여겼던 이은설은 설령 부친이 나쁜 사람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하더라도 일단 알고 싶었다고 훗날 전해진다. 종손이라는 책임감도 작용했다. 자신이 가족의 역사를 찾지 않으면 이대로 끝날 수 있다는 걱정이었다.
1992년, 뒤늦게 열린 역사의 문
1992년 안식년을 맞은 이은설은 부친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어머니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6·25 피란길에 어머니가 태워버린 아버지의 책과 수감 기록 같은 것들이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서울의 동료에게 사정을 털어놓자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대단한 분이야!”
이철하가 독립운동 관련 기록에 이름이 남아 있는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그때 처음 확인됐다. 한 개인의 역사가 가족 바깥에서는 전혀 다르게 기억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철하를 가족사에서 지운 것은 아내 민금순의 의지였지만, 역사는 다른 방식으로 그를 붙잡고 있었다.
사망 60년 만에 추서된 건국훈장 애국장
부친의 독립운동 전력을 확인한 이은설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이철하는 사망으로부터 약 60년 만인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사후 추서받았다. 이은설은 이후에도 더 많은 자료를 찾기 위해 노력을 이어갔으나, 건강이 악화되면서 딸에게 가족의 뿌리를 찾는 일의 배턴을 넘겼다.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조사가 손녀 세대로 이어진 것이다.
| 연도 | 주요 사건 |
|---|---|
| 1933년 | 이철하 사진 촬영(기록상 확인) |
| 1930년대 | 4년 옥고 후 결핵 후유증으로 27세 사망 |
| 1960년 | 아내 민금순 사진 촬영 |
| 1960년대 | 아들 이은설, 미국 유학 후 통계학 교수로 정착 |
| 1992년 | 이은설, 안식년에 부친 흔적 조사 시작 |
| 1993년 | 이철하, 건국훈장 애국장 사후 추서 |
| 2026년 8월 | 손녀 마거릿 주혜 리, ‘비밀의 들판’ 한국 출간 |
“공산주의자라는 말은 쓰지 말라” — 두 세대를 가른 이념의 벽
이은설이 부친의 독립운동 전력을 복원하면서도 끝내 떨쳐내지 못한 두려움이 있었다. 이철하의 묘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이장하는 과정에서도 부친의 수감 사실을 감추려 했고, 딸에게는 “책에 할아버지가 공산주의자라는 내용을 쓰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고 한다.
마거릿 주혜 리는 13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아버지 자신 역시 진보주의자이고, 부친이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간 것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한국에서 가장 반공 교육이 심한 시기에 성장했기 때문에 두려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립운동가로 공식 복권된 이후에도 ‘공산주의자’라는 기록은 여전히 지우고 싶은 대목으로 남아 있었다는 뜻이다.
손녀가 이어받은 배턴 — ‘비밀의 들판’의 탄생
마거릿 주혜 리는 아버지로부터 배턴을 넘겨받을 무렵 뉴욕대 저널리즘스쿨에 재학 중이었다. 수업을 통해 가족의 역사가 한국뿐 아니라 세계사적 사건들과 교차점이 있고 알릴 가치가 있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이후 진보성향 잡지 ‘더 네이션’에서 일하며 학문적 호기심을 이어갔다.
책 구성에 대해 그는 인터뷰에서 “역사가 선형적으로 전개될지언정, 사건 발생 순서대로 발견하게 되는 건 아니지 않나. 과거에 대한 우리의 기억 또한 마찬가지”라며 시기와 장소를 넘나드는 비선형 서술 방식을 택한 이유를 밝혔다. 이철하가 겪은 일의 진상은 책의 말미에야 드러나도록 구성됐다. “이 책을 일종의 미스터리 소설로 생각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달 한국에 소개된 ‘비밀의 들판’은 20여 년간의 여정을 담은 결과물이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이 116년 만에 고국에서 처음 공개됐듯이, 독립운동의 흔적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때로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 마거릿 주혜 리의 책은 그 기다림의 과정을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재미교포 2세의 시선이 드러낸 현대사의 단면
마거릿 주혜 리는 광복절을 앞두고 한국을 찾아 8월 1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언론과 만났다. ‘비밀의 들판’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재미교포 2세라는 위치에서 20세기 한국사를 바라본 시각 때문으로 분석된다. 독립운동, 공산주의 낙인, 이민, 반공 이념, 세대 간 단절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복합적 층위가 한 가족의 이야기 속에 압축돼 있다.
내밀한 가족사를 공개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물음에 그는 우리 집안의 역사가 한국뿐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과 교차점이 있다는 인식이 글을 쓰는 동기가 됐다고 밝혔다. 이은설이 “설령 부친이 나쁜 사람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하더라도 일단 알고 싶었다”고 했던 것처럼, 역사를 복원하려는 의지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보다 앞서 있었다.
이철하가 세상을 떠난 지 90여 년이 지난 2026년, 그의 삶이 손녀의 책으로 기록됐다. 한 독립운동가의 이름이 전과자의 낙인 뒤에서 걸어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이다.
출처: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