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인물에 욕하던 그날, 아버지가 꺼낸 한마디
· 아버지는 수십 년간 ‘나라 공훈으로 금광채굴권 받았다’고 알았다
· 하영 증조부 친일 논란 속 유사 사례로 동시에 주목
하영 증조부 친일 행적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2015년 영화 ‘암살’의 친일파 인물이 자신의 증조부를 모델로 했다는 직장인의 온라인 고백이 주목받고 있다. 11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된 이 글은 친일파 후손이 직접 나서 집안의 역사를 공개했다는 점에서, 최근의 하영 관련 논란과 맞물려 빠르게 확산됐다.
영화 ‘암살’의 강인국 — 금광채굴권을 쥔 친일파
2015년 개봉한 영화 ‘암살’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독립운동가들의 작전을 다룬 한국 액션 영화다. 배우 이경영이 맡은 강인국은 금광채굴권을 보유한 친일파 기업인으로 묘사되며, 독립운동 세력과 맞서는 주요 악역으로 등장한다.
A씨는 11일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배우 이경영이 금광채굴권을 따려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 증조부가 바로 금광채굴권을 딴 사람”이라고 밝혔다. 강인국의 금광채굴권 관련 설정이 자신의 증조부 실제 행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영화 측이 해당 캐릭터를 실존 인물을 모델로 구성했는지 여부는 현재까지 공식 확인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금광채굴권은 조선총독부의 허가 없이는 취득이 불가능한 자원 이권이었다. 이를 취득한 인물은 대부분 일제와 협력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역사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영화 ‘암살’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강인국 캐릭터에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가족 영화 관람 중 나온 아버지의 폭로
A씨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가족과 함께 ‘암살’을 보던 날이었다. 영화 속 강인국에게 욕설을 하던 중, 옆에 있던 아버지가 “네 증조부가 금광채굴권 있었던 저 인물이다”라고 알려줬다. A씨는 “우리 집안의 뿌리가 매국노라는 사실을 부모님과 함께 영화를 보고 알았다”고 전했다.
아버지 역시 이전까지는 진실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였다. A씨에 따르면 아버지는 할아버지로부터 “나라에 큰 공을 세워 금광채굴권을 딴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자원 이권 취득이 ‘공훈’의 결과라는 인식이 세대를 거쳐 내려온 셈이다.
아버지가 스스로 찾아낸 진실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 본인이었다. A씨는 “‘그 시대에 금광채굴권을 어떻게 땄다는 거지?’라는 의문을 품고 스스로 자료를 찾아보다 아버지도 그제야 (증조부의) 친일 행적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역사적 맥락을 직접 조사한 뒤에야 ‘공훈’이 아닌 친일 협력의 결과였음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A씨는 “처음부터 아버지는 조부가 친일 행적을 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가족 내에서 불편한 역사가 긍정적인 서사로 변형되거나 세대 간 전달이 단절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 이번 고백에서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손들은 잘 살면 안 된다” — 고백의 무게
A씨는 자신이 친일파의 후손임을 직접 인정하며 “그들의 자손들은 잘 살면 안 되는 것이 맞다”고 썼다. 현재 간호사로 일한다는 A씨는 “조상의 업보를 청산한다는 생각으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고도 했다.
집안의 현재 상황도 함께 공개됐다. “업보는 다 자손들한테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뒤 일용직을 하며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친척들도 불행한 결혼생활과 어려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집안의 어려움을 조상의 행적과 직접 연결지어 해석한 A씨 본인의 진술임을 감안해야 하지만, 친일 후손이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성찰하는 사례는 드물다는 점에서 온라인 반응이 이어졌다.
하영 증조부 논란과의 접점
이 고백이 특히 주목받은 배경에는 배우 하영의 증조부 논란이 있다. 하영은 유튜브 채널과 지상파 예능에 출연해 자신의 집안을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소개하며 “증조부(안상호)께서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하셨고, 고종 황제를 진료하셨다”고 밝혔다. 이후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됐다.
하영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논란과 후손 고백글이 재조명된 경위는 별도로 정리돼 있다. A씨의 고백은 이 논란이 진행되는 시점에 올라오면서 유사한 사례로 함께 거론됐다. 두 사례 모두 후손이 조상의 친일 행적을 뒤늦게 인식하거나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영 소속사 입장 번복과 본인 자필 사과
하영의 소속사는 증조부 친일 행적 논란이 불거지자 처음에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하루 만에 이를 번복했다. 구체적인 번복 경위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사실 확인 과정에서 입장이 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영 본인은 1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자필 편지를 게재해 직접 사과했다. 소속사가 하루 만에 입장을 바꾸고 본인이 자필 사과까지 공개한 전개는, 관련 논란이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확산됐음을 보여준다.
친일 후손의 공개 고백, 이례적인 이유
친일파 후손이 직접 나서 집안의 역사를 공개하는 사례는 흔하지 않다. 대부분의 친일 행적은 학술 연구나 공공 기록, 언론 보도를 통해 사후에 밝혀지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A씨의 사례처럼 가족 내에서 친일 행적이 ‘공훈’으로 재해석되거나 세대를 거치면서 사실 전달이 단절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영 논란과 A씨 고백이 비슷한 시점에 부각되면서,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과 그 후손에 대한 역사적·사회적 논쟁이 다시 이어지고 있다. 역사적 행위를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전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출처: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