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49도 폭염 정전 시위: 수천 명 사이에드 퇴진 요구

민주화 14년, 정전이 다시 혁명의 불씨가 됐다

· 섭씨 49도 폭염에 전력 수요 6000MW 돌파, 공급은 4400MW가 한계
· 수천 명 부르기바 거리 집결…2011년 혁명 구호 14년 만에 부활
· 열사병·온열질환 사망 150~200명 추정, 병원·가정 냉방 속수무책

2010년 말 아랍의 봄을 촉발한 뒤 아랍권에서 유일하게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로 평가받아온 튀니지에서,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전국적 정전 사태를 부르고 그 정전이 다시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수도 튀니스의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에 수천 명의 시민이 집결해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이 5일(현지시간) 상세히 보도한 내용이다.

사상 처음 6000MW — 발전 가능한 건 4400MW가 한계였다

직접적 도화선은 지난달 중순 시작된 기록적 폭염이었다. 일부 지역의 기온은 섭씨 49도까지 치솟았다. 에어컨 가동이 일제히 급증하면서 국영 전력·가스공사(STEG)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최대 전력 수요가 사상 처음으로 6000㎿에 달했다. 문제는 실제 가동 가능한 발전 능력이 4200~4400㎿에 그쳤다는 점이다. 전체 수요의 4분의 1이 넘는 약 1600㎿가 순간적으로 부족했다.

당국은 전국적 대정전을 막기 위한 조치로 지역별 순환 단전에 나섰다. 정전은 일부 지역에서 24시간을 훌쩍 넘겼다. 냉방이 멈추면서 단수와 통신 장애도 잇따랐다. 에어컨도, 냉장고도, 수도도 끊긴 도시 한복판에서 시민들이 버텨야 했던 날들이었다. 튀니지 전력망이 이 수준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최악의 폭염 앞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신이 지옥 문을 열었다” — AFP가 전한 현지 민심

AFP통신은 폭염과 정전이 겹친 튀니지의 현지 분위기를 “신이 지옥 문을 연 것 같았다”는 말로 압축했다. 인명 피해 규모는 공식 집계되지 않았다. 외신에 따르면 열사병과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인원은 150~200명으로 추정된다. 공식 수치가 아직 발표되지 않은 만큼 실제 규모는 확인이 필요하다.

피해는 취약계층에 집중됐다. 튀니지 젊은의사기구(OTJM)는 현지 매체에 “정전으로 냉방이 불가능해진 가정과 병원에서 고령자와 만성질환자의 피해가 컸다”고 설명했다. 입원 환자가 있는 의료 시설에서 전력이 끊기면서 냉방 장비와 일부 의료 기기까지 멈추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공식 사망자 집계는 이뤄지지 않았으나, 외신은 온열질환 사망자를 150~200명으로 추정했다. 냉방이 끊긴 병원이 직격탄을 맞았다고 OTJM은 밝혔다.

수천 명이 다시 선 부르기바 거리 — 15년 전 그 구호가 돌아왔다

지난달 25일, 2011년 혁명의 상징적 현장이었던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에 수천 명의 시민이 다시 모였다. 시위대는 “전기도 없고 물도 없다. 감옥과 고물가만 있다”고 외쳤다. 그리고 2011년 독재자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를 몰아낼 때 거리를 울렸던 구호 “국민은 정권의 몰락을 원한다”가 14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등장했다.

이날은 튀니지 공화국 선포일이기도 했고, 사이에드 대통령이 의회를 무력화하고 권력을 독점한 지 꼭 5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외신이 주목한 것은 이번 집회의 성격이다. 야권 정치인이나 민주화 운동가가 주도하던 기존 반정부 집회와 달리, 정전과 단수로 일상이 직접 무너진 일반 시민들이 시위를 이끌었다고 외신은 전했다. 정치적 동원이 아닌 생활고가 만들어낸 집회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랍의 봄, 튀니지가 걸어온 민주화의 길

아랍의 봄의 출발점은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 중부 도시 시디부지드였다. 노점상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경찰의 단속과 모욕에 항의해 분신하자 실업·부패·정치적 억압을 향한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23년간 집권한 벤 알리 대통령은 2011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로 도주했다.

튀니지의 시위 여파는 이집트·리비아·예멘·시리아로 퍼져나갔지만 대부분의 나라는 군부 통치나 내전으로 빠져들었다. 튀니지만이 자유선거와 평화적 정권 교체를 실현했고, 국제사회의 시선은 이 나라에 쏠렸다. 2014년에는 대통령과 의회가 권력을 나눠 갖는 새 헌법이 제정됐다. 노동계·법조계 등 4개 시민단체로 이뤄진 ‘국민대화 4자기구’는 정치적 충돌을 대화로 풀어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며 민주화 성공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정치는 안정을 찾지 못했다. 혁명 이후 10년 동안 정권과 내각이 끊임없이 교체됐고,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로 양분된 정당 정치는 힘이 약한 연립정부의 개혁 시도를 번번이 좌초시켰다. 민주주의의 절차는 확보됐지만 시민들의 일상이 나아지는 속도는 더뎠다.

73% 득표로 등장한 사이에드, 집권 후 의회를 봉쇄하다

이 정치 공백을 비집고 등장한 인물이 카이스 사이에드다. 헌법학 교수 출신으로 기성 정치권과 무관한 무소속이었던 그는 검소한 이미지를 앞세워 2019년 대선 결선에서 73%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기존 정치권을 심판해달라는 민심이 폭발적으로 쏠린 결과였다.

그러나 집권 이후 사이에드의 행보는 달랐다. 2021년 7월, 국정 마비와 코로나19 대응 실패를 이유로 군을 동원해 의회를 봉쇄했다. 친위 쿠데타라는 반발이 국내외에서 적지 않았으나, 경제 위기 해결에 대한 기대가 맞물리며 1인 통치 체제가 사실상 완성됐다. 그는 이후 포고령으로 국정을 운영하다가 2022년 의회 자체를 해산했다.

튀니지 현대사 주요 사건 흐름

시기 주요 사건
2010년 12월 부아지지 분신, 아랍의 봄 촉발
2011년 1월 벤 알리 대통령(23년 집권) 사우디아라비아로 도주
2014년 권력 분점형 신헌법 제정, 국민대화 4자기구 노벨평화상 수상
2019년 사이에드, 73% 득표율로 대통령 당선
2021년 7월 군 동원 의회 봉쇄, 1인 통치 체제 구축
2022년 의회 해산, 포고령 통치 본격화
2026년 7월 섭씨 49도 폭염·전국 정전, 수천 명 퇴진 시위

민주화는 성공, 경제 혁명은 미완 — 이번 사태가 보여주는 것

이번 사태를 두고 외신에서는 튀니지가 정치적 민주화에는 성공했지만 정작 먹고사는 문제의 혁명에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업과 물가 상승, 낡은 인프라는 수십 년이 지나도 개선되지 않았다. 한여름 24시간 정전이 이어지는 수도 튀니스의 풍경은 그 15년간의 성적표를 압축한다는 시각이 있다.

사이에드 대통령이 이번 사태에 어떤 공식 입장을 내놓을지, 시위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현재로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외신들은 민주화 이후 가장 폭넓은 계층의 시민들이 참여한 대중 시위라는 점에서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고 전하고 있다. 아랍의 봄이 시디부지드의 분신에서 시작됐듯, 이번 시위의 씨앗은 한여름 끊겨버린 전기와 수도였다.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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