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도, 간호사도…병원이 마약 유출 통로가 됐다
· 지난해 마약류 사범 2만3403명·압수 1156㎏, 2년 연속 2만명대
· 필로폰 1회 2~3만원, ‘던지기’ 비대면 거래로 20·30대 접근 장벽 낮아져
병원에서 의식 잃고 발견된 산부인과 원장
서울 강남의 한 산부인과 대표원장이 자신의 병원에서 프로포폴을 직접 투약한 혐의로 경찰에 현행범 체포됐다. 이 의사는 지난 6일 병원 안에서 의식 불명 상태로 발견됐으며, 지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그 자리에서 체포했다. 지상파 방송과 유튜브 채널에서 여성 건강 정보를 알려온 인물로 방송에도 얼굴을 알린 의사였다.
약물의 작용과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할 의료 전문가가 의식 불명에 이를 때까지 마취제를 스스로 투약했다는 사실은, 의료계 내부의 마약류 관리 실태에 대한 의문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 병원 내 마약류 관리 체계가 내부 사용자를 제어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 사례로 지목된다.
한 달 사이 반복된 병원 내 마약 사고
이번 체포 불과 한 달 전에도 유사 사건이 있었다. 강남의 한 피부과에 신입 직원으로 출근한 20대 간호조무사가 폐기물 보관함에 버려진 주사기에서 남은 프로포폴을 빼내 스스로 투약하다 적발됐다. 처방 후 폐기 단계에 있던 약물이 병원 내부 직원에 의해 유출된 사례다.
올해 초에는 약물을 투약한 상태로 포르쉐를 운전하던 운전자가 반포대교에서 한강 둔치로 추락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의료용 마약류가 병원 밖으로 빠져나와 약물 운전 사고로 이어지는 경로가 반복되고 있다. 세 사건이 연달아 드러나면서 의료 현장의 마약류 관리 허점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지난해 마약류 사범 2만3403명…2년 연속 2만명대
정부가 집계한 지난해 마약류 사범 수는 2만3403명이다. 2024년 2만3022명에 이어 2년 연속 2만명대를 기록했다. 압수된 마약류 총량은 1156.4㎏에 달했다. 유형별로는 투약사범 8798명, 밀조·밀수·밀매 등 공급사범 6777명, 단순소지·기타 7828명으로 집계됐다.
| 구분 | 인원(명) |
|---|---|
| 투약사범 | 8,798 |
| 공급사범(밀조·밀수·밀매) | 6,777 |
| 단순소지·기타 | 7,828 |
| 합계 | 23,403 |
적발 건수가 2만명대에 고착된 배경에는 밀반입 경로의 다양화와 온라인 거래 확산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연간 적발 건수는 수사 역량에 따른 가시 범위를 반영하는 수치이기도 해, 실제 규모는 이보다 클 수 있다는 지적도 수사 현장에서 나온다.
20·30대가 전체의 59.4%…10대 청소년도 무방비 노출
손희민 서울 용산경찰서 마약범죄수사팀장은 최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지난해 전체 마약사범의 59.4%가 20·30대였다고 밝혔다. 진행자 유재석도 수치를 듣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10명 중 6명이 청년층이라는 계산이다.
더 어린 세대의 노출도 확인되고 있다. 손 경감은 10대 청소년이 전자담배 액상이나 이른바 ‘집중력 약’, ‘다이어트 약’ 등으로 알고 마약류를 복용하게 되는 사례가 수사 현장에서 실제로 확인된다고 전했다. 성분과 정체를 모른 채 유입되는 경로가 청소년층에서 관찰된다는 설명이다. 약물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기 전 단계에서 노출이 이뤄지는 구조다.
피자값에 살 수 있는 마약…비대면 ‘던지기’ 거래 자리잡아
가격 구조도 과거와 달라졌다. 손 경감은 수사 현장에서 필로폰 1회 투약분이 2만~3만원에 거래된 사례가 있다고 밝히며 ‘피자 한 판 값’에 비유했다. 전국 평균가를 뜻하는 수치는 아니지만, 일부 지역에서 구매 문턱이 낮아진 흐름을 보여주는 현장 사례다.
유통 방식도 고도화됐다. 구매자가 온라인으로 대금을 먼저 송금하면 판매자가 특정 장소에 마약을 숨겨두고 위치를 문자로 알려주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이 자리를 잡았다. 대면 접촉 없이 거래가 완결되기 때문에 추적이 까다롭다. 지난해 6월부터 올해 4월까지 적발된 온라인 마약사범은 5386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국경 단계에서 적발된 마약류는 3233㎏에 달했다.
합법 처방 2020만 명 vs 병원에서 새는 약물
의료용 마약류의 적법한 사용 규모 자체는 크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의료용 마약류를 한 번 이상 처방받은 사람은 약 2020만명으로, 국민 10명 중 4명꼴이다. 이 가운데 프로포폴 등 마취제를 처방·투약받은 사람은 1262만명이었다. 대부분은 수술이나 내시경 검사 같은 정상적인 의료 행위 과정에서 이뤄진 투약이다.
문제는 병원에 합법적으로 반입된 약물이 의료 목적 바깥에서 사용되는 경우다. 지난 6월 경찰에 적발된 강남의 한 피부과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진료기록을 남기지 않은 채 1회당 30만~100만원을 받고 100여 차례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해준 혐의를 받는다. 원장과 실장 등 병원 관계자 6명이 입건됐고, 상습 투약자 12명도 함께 입건됐다. 이어 폐기 주사기를 통한 간호조무사 투약, 의사의 셀프 투약까지 연이어 드러났다.
‘마약 청정국’은 이제 과거형…10월까지 범정부 특별단속
한국에서 오랫동안 통용됐던 ‘마약 청정국‘이라는 표현은 국제기구가 공식적으로 부여하는 지위가 아니었다. 마약 범죄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시기의 상황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연간 적발자가 2만명대에서 내려오지 않는 현재 시점에서는, 이 표현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이달부터 10월 말까지 범정부 마약류 특별단속을 진행 중이다. 해외 밀반입, 온라인 유통, 클럽·유흥업소뿐 아니라 프로포폴·케타민 등 의료용 마약류의 불법 유통까지 집중 단속 대상에 포함됐다. 병원 내부 관리와 처방 이력 확인 절차가 얼마나 실효성 있게 작동하느냐가 향후 추이를 가를 변수로 거론된다. 의료 현장을 통한 유출 경로를 차단하는 것이 현 단계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출처: 서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