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기록의 날, 역대급 실적이 오히려 시장을 흔들었습니다
· 사상 첫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 발동
· SK하이닉스 최대 실적에도 주가 16.89% 급락
29일 오후 1시 17분 기준, 코스피는 전일 대비 10.59% 하락한 5385.66을 기록하며 5400선이 무너졌습니다.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발표한 SK하이닉스마저 장중 16%대로 급락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이날 낮 12시 30분께 지수가 8% 이상 밀리자 20분간 매매를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는데, 전날(28일)에 이어 이틀 연속 작동한 것은 제도 도입 이후 코스피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 어떤 기록인가
서킷브레이커는 주가지수가 8% 이상 하락할 때 시장 과열과 패닉 매도를 막기 위해 20분간 매매를 전면 중단하는 제도입니다. 이날 코스피는 올해 들어 9번째, 역대 15번째 서킷브레이커를 기록했습니다. 핵심은 ‘연이틀’이라는 점입니다. 코스피 역사에서 이틀 연속으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코스닥도 9.50% 하락한 638.8을 기록하며 올해 4번째, 역대 14번째 서킷브레이커를 맞았습니다. 코스닥의 이틀 연속 발동은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10월 23~24일), 미국 신용등급 강등(2011년 8월 8~9일)에 이어 세 번째 사례입니다. 두 지수 모두 서킷브레이커 이후에도 하락세가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 지수 | 이날 하락률 | 올해 발동 횟수 | 역대 발동 횟수 | 이틀 연속 선례 |
|---|---|---|---|---|
| 코스피 | 10.59% | 9회 | 15회 | 사상 최초 |
| 코스닥 | 9.50% | 4회 | 14회 | 2008·2011년 이후 세 번째 |
삼성전자·SK하이닉스, 심리적 지지선 동반 붕괴
시장 충격의 중심에는 국내 증시 시가총액 1·2위 종목의 동반 급락이 있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오후 1시 17분 기준 전일 대비 16.89% 하락한 128만8000원에 거래됐습니다. 130만원 선이 무너진 것입니다. 장 초반에는 전일 대비 2.39% 오른 158만7000원에 강세 출발했으나, 실적 발표 이후 컨퍼런스콜이 끝나자마자 급격한 하락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삼성전자도 같은 시각 전일 대비 10.91% 하락한 19만6000원을 기록하며 20만원 선이 이탈됐습니다. 두 종목 모두 장 초반 상승 출발 이후 급반전한 패턴이 동일합니다. 코스닥에서는 바이오주들이 지수 하락을 주도했습니다.
사상 최대 실적에도 SK하이닉스 주가가 꺾인 이유
SK하이닉스는 이날 올해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56.8% 증가한 79조3187억원, 영업이익은 557.2% 늘어난 60조5426억원이라고 밝혔습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올 1분기에 이어 분기 기준 최대치를 경신했으며, 상반기 누적 영업이익은 100조원에 육박합니다. 수치 자체는 시장 예상을 충족하거나 상회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적 이후 열린 컨퍼런스콜이 변수였습니다. SK하이닉스 60조 영업이익에도 주가가 반응하지 않은 구체적인 배경으로 증권가는 두 가지를 지목합니다. 주주환원정책이 전혀 제시되지 않았고, 향후 실적 가이던스(전망치)도 내놓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상 최대 실적이라는 과거보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는 시장에 답이 없었던 셈입니다.
컨퍼런스콜 논란: ‘국장 리스크’라는 반응이 나오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이번 컨퍼런스콜을 두고 “컨퍼런스콜이 국장 리스크”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처럼 해외 빅테크 최고경영자들이 직접 등장해 비전과 전략을 설명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이번 SK하이닉스 컨퍼런스콜에는 최태원 회장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한 증권가 관계자는 “과거처럼 신비주의도 아니고 치킨 먹는 모습도 공개하는 마당에 컨퍼런스콜에 나오지 않은 건 실망감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측에서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해외 빅테크의 컨퍼런스콜과 비교해 두루뭉술한 답변으로 투자자에게 실망감을 줬다”는 지적도 제기됐습니다. 역대 최대 실적이 오히려 시장의 실망을 증폭시킨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습니다.
월가에서 공식화된 ‘반도체 고점론’
전날 밤(28일) 미국 증시에서는 마이크론이 8.85%, 샌디스크가 14.25%, SK하이닉스 ADR이 8.98% 하락하며 반도체주 전반이 동반 약세를 보였습니다. 미국 투자전문매체 247월스트리트는 “AI 메모리 호황이 꺼졌다”며 “‘손쉬운 돈벌이’ 시대는 공식적으로 끝났다”고 보도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투자자들이 AI에 대한 우려로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같은 날 다우지수는 코카콜라(+5%) 등의 상승에 힘입어 1.03% 오름세로 마감했습니다. 반도체·기술주에서 빠진 자금이 소비재 종목으로 이동한 흐름이 수치로 확인된 것입니다. 월가에서는 AI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됐던 글로벌 자금의 섹터 이동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코스피-나스닥 연동성, 2021년 이후 최고 수준
미 CNBC는 코스피와 나스닥100지수의 60일 상관계수가 최근 0.50 수준까지 상승하며 202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뉴욕증시 개장 전 한국 증시를 통해 미국 기술주의 흐름을 가늠하고, 반대로 미국 증시 결과가 다음 날 국내 시장에 즉각 반영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이는 이날 국내 증시의 급락이 이날 밤 미국 반도체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최근 메모리 반도체 종목에서 한국 시장이 미국 시장을 선행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 밤 뉴욕 개장 이후의 흐름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전문가 시각: 낙폭 과도 vs 구조적 전환
키움증권 한지영 연구원은 “과거 비슷한 폭락은 금융위기·전쟁·버블 붕괴 등 시스템 위기에서 나타났던 것과 달리, 현재는 폭락을 뒷받침할 신호가 뚜렷하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메모리 피크아웃 우려, 중국의 증설 경쟁, 미 연준 금리 인상 가능성 등은 아직 잠재적 위험에 머물고 있는 만큼 현재의 낙폭은 과도하다는 분석입니다.
반면 월가에서는 AI 메모리 수요의 구조적 둔화 가능성을 거론하며 투자 자금의 섹터 이동이 시작됐다는 시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과도한 낙폭이라는 국내 전문가 분석과 구조 변화의 시작이라는 월가의 해석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이날 밤 미국 시장의 반도체 종목 흐름이 향방을 가를 또 하나의 변수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출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