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받고 주가도 빠졌는데, 왜 500대가 팔렸나
· 매직마우스 닮았다 혹평·전 회장 공개 비판·주가 8.5% 급락
· 중국 부유층 공략·고객 등급 전략이 복합 작용
페라리의 첫 순수 전기차 루체가 출시 두 달 만에 올해 판매 목표인 500대를 달성했다. 공개 직후부터 조롱이 쏟아졌고, 전직 회장은 이탈리아 언론을 통해 공개 비판에 나섰다. 주가도 한때 8.5%까지 밀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를 비롯한 외신들은 중국 부유층과 미국 기술기업가를 겨냥한 시장 공략, 그리고 페라리 특유의 고객 등급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동한 결과로 분석했다.
루체 완판까지의 기록
루체는 지난 5월 25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처음 공개됐다. 페라리가 처음 내놓는 순수 전기차였다. 이탈리아 출고가는 55만 유로, 한화로 약 9억 원으로 책정됐다. 중국에서는 6월 29일 출시가 이루어졌고, 초도물량 88대가 출시 당일 전량 계약됐다. 7월 초 외신들은 페라리가 루체의 2025년 연간 판매 목표인 500대 달성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 시점 | 주요 사건 |
|---|---|
| 2025년 5월 25일 | 이탈리아 로마에서 루체 세계 최초 공개, 이탈리아 출고가 55만 유로(약 9억 원) |
| 공개 직후 | 매직마우스 닮았다는 조롱 확산, 밀라노 증시 페라리 주가 최대 8.5% 하락 |
| 2025년 6월 29일 | 중국 출시, 초도물량 88대 당일 전량 계약 완료 |
| 2025년 7월 초 | 연간 목표 500대 달성 확인 (FT 등 외신 보도) |
‘매직마우스’ 비교가 번진 방식
루체에 대한 부정적 반응은 공개 직후부터 거셌다.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서 한 이용자가 루체와 애플의 입력 장치 ‘매직마우스’를 나란히 붙인 합성 사진을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작성자는 “페라리가 전기차(EV)를 얼마나 만들기 싫어했는지 증명한 차”라는 문구를 함께 달았다. 이 게시물은 빠르게 확산됐다.
루체의 디자인에 애플 출신 조너선 아이브가 이끄는 디자인팀이 참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두 제품 사이의 외형 비교는 더 자주 인용됐다. 아이브는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 애플 주요 제품 디자인을 주도한 인물이다. ‘정통 페라리와 거리가 먼 디자인’이라는 기존 고객들의 감정적 반발이 이 비교와 맞물려 조롱의 층위를 두껍게 만들었다. 매직마우스는 충전 단자가 바닥 면에 있어 충전 중에는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어, 밈의 확산을 가속하는 소재로도 활용됐다.
전 회장의 공개 비판과 주가 충격
차를 둘러싼 부정적 기류는 외부에서 끝나지 않았다. 페라리를 2014년까지 이끈 루카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 전 회장이 이탈리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비판에 나섰다. 그는 “우리는 전설을 파괴할 위험에 처했다. 진심으로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적어도 차에서 앞발을 치켜든 말 문양(카발리노 람판테)은 지워주길 바란다”고도 했다.
밀라노 증시에서 페라리 주가는 루체 공개 이후 한때 8.5%까지 밀렸다. 전직 수장의 공개 발언이 투자 심리에 직접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완판의 첫 번째 배경: 중국 부유층과 기술기업가
그러나 차는 팔렸다. 외신 분석가들이 첫 번째로 지목하는 배경은 시장 타깃팅이다. 페라리는 루체를 중국 부유층과 미국 내 기술기업가들을 겨냥한 모델로 포지셔닝했다. 두 집단은 전기차에 대한 거부감이 낮고, 브랜드 지위를 중시하는 공통점이 있다.
중국에서 초도물량 88대가 출시 당일 전량 계약 완료된 것은 이 전략이 실제로 유효했음을 보여주는 직접적 근거다. 페라리 측은 루체를 기존 내연기관 스포츠카 고객이 아닌 신규 고객 대상으로 설계한 모델임을 공식 입장으로 내세우고 있다. 루체의 성격을 기존 페라리 라인업과 분리해서 평가해야 한다는 논리다.
두 번째 배경: 고객 등급 구조가 작동한 방식
외신들이 주목한 또 다른 구매 동인은 페라리 특유의 고객 등급 체계다. 페라리는 구매 이력과 브랜드 충성도에 따라 희소 모델의 구매 기회를 먼저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 799대만 생산하는 F80처럼 배정 물량이 극히 제한된 차량을 구매하려면 높은 고객 등급이 요구된다.
블룸버그는 지난달 한 구매자의 말을 인용해 “페라리 측이 최고급 고객 자리를 유지하려면 루체를 구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중국의 한 페라리 딜러도 FT와의 인터뷰에서 “루체를 구매하면 내연기관 모델보다 더 많은 고객 크레딧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이러면 한정판 모델을 구매하기가 더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루체 구매가 단순한 차량 소비가 아니라 향후 한정판 배정권을 위한 일종의 포지션 확보로 기능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본사 지침과 현장의 괴리
페라리 측은 고객 등급과 루체 구매를 연계했다는 분석에 공식 반박 입장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고객이나 수집가에게 페라리를 기쁘게 하려고 특정 모델을 사라고 권하지 않는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딜러들에게도 루체 구매와 한정판 내연기관 모델 배정을 연계하지 말라는 사전 지침을 내렸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FT는 이 지침이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한 중국 고객은 FT와의 인터뷰에서 “루체 구매로 고객 등급이 높아지면 향후 한정판 모델을 더 쉽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본사가 공식적으로는 연계를 부인하면서도, 현장 영업에서는 다른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다는 정황이다.
분석가 전망: 2030년 2,500대는 가능한가
분석가들은 페라리가 장기 목표로 제시한 2030년까지 2,500대 판매가 가능한 궤도에 올랐다고 평가하고 있다. 출시 초기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조기 완판이라는 실적이 이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
다만 루체를 둘러싼 쟁점들이 브랜드에 미칠 중장기 영향은 아직 불확실하다. 디자인 논란, 전직 수장의 공개 반발, 고객 등급 연계 의혹까지 복합적으로 겹친 가운데 첫 번째 전기차가 이뤄낸 완판 기록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는 후속 모델 반응과 판매 추이가 함께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출처: 경향신문